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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s Story/Peter's Column

선발과 기회 허용의 기준




대입 문제로 말이 많다. 수시가 좋다 정시가 좋다..


이것에 대한 고찰은 추후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보고, 오늘은


우리가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흔히 교육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발과 사회화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가치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지식(의무교육의 영역), 


이런 것들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그런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인재들을 선발해


더 많은 기회를 허용한다(대입)


이후 전문성을 띤 심화 지식(의무교육 이후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을 더욱 계발해


자기 몫을 하는 한 사람이자 동시에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고학력은 사회에서 진로선택의 폭이 더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보통은 그들로부터 나온다.


혹자는 단지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이끌기는 어렵다고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배가 난파되어 몇몇 사람들이 무인도에 조난을 당했다고 하자.


한 명이 사람들을 이끌어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할 경우,


가장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평소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봤거나 생존에 특화된 달인이 따로 없다면


당신은 그중 가장 지성이 뛰어난 사람을 의지할 것이다.


과거에 힘이 강한 자를 중심으로 무리가 모였다면


이제는 지혜로운 자가 중심이 되어 집단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 질 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짙어진다.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변수들을 계산해 대응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성의 수준도 더 높아지게 된다.


이것을 달리 평가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일단 우리는 성공적인 대입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인재들에게 세상을 맡긴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시민들을 대신해 인재 선발의 역할을 맡는다


일차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그들 대학 자체의 발전과 생존에 유리하기에


그들 나름대로의 엄정한 기준을 적용해 인재들을 뽑게 된다

(사회지도층 선발 기준에 시장 경쟁의 원리가 섞여 나름 효과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발된 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허락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맡을 지도층으로 세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우려했을지 모르는 부분,


단지 공부만 잘하는... 그러니까 지성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가? 하는 점.


사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고등학생인데,


당신의 학급에 1) 전교 1등을 재학중 단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뛰어난 수재이나 


남을 도와주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고 그 밖에 주변의 평도 그다지 좋지 못한 친구와


2) 또 성적은 반에서 2~3등을 왔다갔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타인을 배려하고 합리적인 기준에서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쪽을 택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누가 이 학급의 대표로서 더 낫다고 생각하겠는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2)가 더 낫다고 본다.


혹자는 그래도 능력이 뛰어난 이로 리더를 삼는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리더를 뽑는 입장에 있는 당신은


앞으로 그 리더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즉! 당신을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다시 묻겠다. 당신은 누가 이 학급의 대표로서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 지도층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흔히 우리가 인성이라고 부르는 이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껏 우리는 수능시험을 통해


더 많은 문제를 맞히고 더 많은 점수를 얻는 학생들을 선발해 사회의 지도층을 맡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되거나 혹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기준, 지원자의 인성.



남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는 사람에게는


더 나은 인성이 요구된다.


그 권한으로 약자들을 해치거나 혹은 이를 사욕을 위해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에 근거한 정시모집은 이런 중요한 가치를 평가에 반영할 수 없다는 큰 맹점이 존재하는 선발 제도이다.


추후 면접 등을 통해 보완한다 하더라도... 


면접관이 듣기 좋은 말만 하면 끝. 그것을 통해 선발 대상의 인성을 심층적으로 평가한다? 


미안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결국 지성+인성 이것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해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짧게는 우리 국가의 발전,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이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인성을, 3년동안 옆에서 관찰한 교사들의 기록을 통해 평가하는, 흔히 질적 평가라고 하는 방식.


이것이 사용되는 수시학생부종합전형 선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물론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존재한다... 이는 실로 유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더 나은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나가며 적용하면 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냐는 말이 생각난다. 딱 그 짝이다.



혹자는 이러한 수시학종의 확대가 서민들의 출세의 기회를 빼앗는 귀족전형이라고 말한다.


단지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다. 그들의 말도 이해는 된다(물론 정시 비율이 더 클 때도 학력과 재력/계층은 비례하는 경향이 컸으므로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있다 여기서는 그들의 주장을 일단 수용해 주고 가자는 차원이다). 이를 고려하여 현재 대입제도는 수시 교과전형(순수 내신), 수시 종합전형(학생부 전반), 정시 이 세가지 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은 


단지 개인에게 공정한 성공과 출세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맡길 차세대 리더들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그 대상에 포함되지 못할것 같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실력과 인성을 아울러 갖춘 사람들을 뽑아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기준이라고 본다.



나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엘리트주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 엘리트주의라는 개념부터 먼저 정확히 했으면 좋겠다. 무슨 뜻으로 했던 말일까?


그럼 똑똑한 사람이 정치를 하고 의사를 해야지 멍청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인가?(여러사람 잡을 일 있나)


단지 그 기준을 고학력으로 나눌 수는 없다는 점이 있다. 사정상 좋은 학교에 가지 못했더라도 능력있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주머니 속에 튀어나온 송곳. 


비범한 자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노릇.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고인이 된 우리의 전직 대통령이 계시다.


물론 그분도 사회의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하긴 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다.


다만 나의 견해에는 한가지 보완된 점이 있다...


인성 검증은 반드시 해야한다.


지성과 인성이 아울러 뛰어난 자에게 우리 집단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잘 하고 있는 지 견제할 장치... 이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이미 이루어 두었고


그 약점들을 점차 조금씩 보완해 나가고 있는 중임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민주주의를 악용하지 않고(흔히 법망을 피해간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법꾸라지)


그 취지를 잘 이해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일해 줄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는 거다.




내 제자들이 대입을 치렀고,


평소 주변의 평이 좋았던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라는 책을 읽던 중, 문득 그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과연 우리 미래를 아름답고 살기좋게 만들어 줄까?


내 행동과 말들이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길 바란다...





이견이 있다면 태클 환영이다.


수시/정시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준비중인데


생각은 정리됐지만 좀더 정제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의 토론이 필요하다.